[전남매거진= 윤진성 ]누구나 갈 수 있는 곳이지만아무나 갈 수 없는 곳나로도항에서 엎드리면 코 닿을 곳에 있는 섬이지만 배를타고 건너야 하기에 날씨가 허락해야 건너갈 수 있는 섬 '쑥섬'이 있다.언제든지 갈 수 있고, 언제든지 만날 수 있었다면, 애시당초 그리움이란 없었을지 모른다.

내가 초등학생시절에는 나로도는 배를 타야 갈 수 있는 곳이었다.

마침 이모님댁이 이곳 나로도에서 배의 엔진을 고치는 일을 하셔서

어머님 손에 이끌려 배를타고나로도를 왔던 추억이 있다.

나로도항 앞에 있는 섬 뒷편으로 석양이 지던 모습은 어린 가슴에도 선명하게 남아있다

훗날 그곳이 쑥섬이라는 것을 알았을때 그리움은 더 쌓여만 갔다.

고두밥을 나에 손에 쥐어주던 막걸리 주조장집 여자아이의 웃음은 흐릿한 추억으로 남아있지만 지금 생각해봐도 절로 웃음짓게 하는 아름다운 추억이다.

고향에 내려오면서도 마음속에는 항상 꼭 한번은 가봐야지 하면서도시간에 쫒겨 쉽사리 갈 수 없었지만 이번 여름휴가에는 필수코스로 쑥섬을 넣어 탐방을 해보기로 했다.

태풍 '다나스'가 지나가면서 쑥섬에 상흔을 남긴 탓인지 나무와 꽃들이 쓰러진채로 있는 모습을 탐방객들에게 보여줄 수 없다며 쑥섬으로 향하는 오전배는 운항이 중단되었고언제쯤 운항이 가능하냐는 물음에는 기약없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배편을 마냥 기다릴 수 없어어렸을 때의 희미한 추억을 되새기며 나로도항을 둘러보았다.

한때는 고흥에서 가장 부촌임을 자랑하던 나로도는 이제 일제강점기 때 생선가공을 했던 공장의 높다란 굴뚝과 백년을 넘긴 교회가 위용을 자랑하지만 지금은 두 곳 다

제 기능을 상실한채로 옛 부귀영화만 추억하고 있을 뿐이다.

오후 1시에 배가 출항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나로도 여객터미널에서 출항에 앞서쑥섬 매니저 김영문님께서 쑥섬에 대한 이야기와 탐방로에 대해 친절하고도 자세히 설명해주셨다.

일요일 쑥섬으로 향하는 첫 배편에는우리 가족과 두 사람뿐이었다.

온전히 우리를 위해 쑥섬을 전세낸 듯 하다.

나로도항에서 출발하는 배를 타고눈앞에 보이는 쑥섬에 발을 내딛었다.

떠나가는 배 뒤로 봉래산과 나로도항이 한 눈에 들어온다.

비로서야 내가 섬에 와있음이 실감난다.

섬은 익숙한 장소로부터의 단절됨을 느낀다.그것은 또 다른 삶과 시간을 경험하는 일이며 그 경험 속에서 색다른 감정을 느껴보는 것이다.

그게 외로움이건 즐거움이건 각박하게 사는 현대인들에게는 치유의 장소로 섬보다 좋은 곳은 없다.

푸른하늘과 쪽빛 바다 그리고 쑥섬을 상징하는 갈매기펜션이 객을 맞는다.

몇 걸음 걷지도 않았는데 비릿한 바다내음과 함께 달보드레한 꽃향기가 실려온다.

하얀 갈매기를 닮은 갈매기펜션에서차를 마시며 작은 창문으로바다를 바라보니 나도 모르게

잊고 있었던 김삼용 시인의 '남으로 창을 내겠소'라는 시어가 떠오른다.

남(南)으로창(窓)을 내겠소.

밭이 한참갈이괭이로 파고호미론 김을 매지요.

구름이 꼬인다갈 리 있소.

새 노래는 공으로 들으랴오.

강냉이가 익걸랑함께 와 자셔도 좋소

왜 사냐건웃지요.

쑥섬은 고흥의 230개 섬중에 하나이지만 제 1호 민간정원으로이름을 올리고 아름다운숲 전국대회에서 누리상을 수상한 경력을 자랑하는 곳이다.

학교 교사인 김상현 선생님의 내외분께서 십여년 전부터 쑥섬을 주민들과 함께 가꾼 결과물이다.

400년된 당숲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대낮인데도 불구하고 빽빽히 우거진 원시림은 어둠이 드리워져 있다.

이곳의 어둠은 칠흑같은 어둠이 아니라 짙푸른 어둠이다.

숲길을 따라 걷다보면간혹 나뭇잎 사이로 새털같은 햇빛이 청신한 기운을 마구마구 쏟아낼 때가 있다.

숲에는 중부 이북에서는 마주하기 어려운 돈나무,후박나무,푸조나무,육박나무 등 아열대 난대림의 수종들로 가득하다.

이 숲에서는 말 모양이나 코알라를 닮은 동물형상을 찾아보는 시간을 갖는 것도쑥섬 여행의 재미를 배가시킨다.

숲속을 걷는 내내 입에서는 탄성이 나도 모르게 흘러나왔다.

"세상에 이렇게 멋진 곳이 내 고향에 있었던 거야"숲을 빠져나와 하나하나 손으로 일군 계단을 따라 산정상으로 향했다.

길이 아닌곳에 길을내고 칡넝굴이 우거진 돌밭을 꽃밭으로 일궈낸노력에 감사함을 느끼며육박나무 아래있던 "내일의 모든 꽃은 오늘의 씨앗에 근거한 것이다"는 시어가 어쩌면김상현 선생님의 자전적 얘기로 들린다.

쑥섬의 정상이래봐야 약 80m 의 작은 동산이다.

청정한 바닷바람을 폐부깊숙히 들이키고 한발자욱씩

돌담길을 지나 정상에 오르면환희의 언덕과 별정원을 만날 수 있다.

연중 300여 종류의 꽃들이 피고지고를 거듭하며 섬을 천상의 화원으로 물들이고 있다.

천상의 화원에서 꽃과 구름의 말을 배우고 바람의 표정을 읽었다.

항구로 미끄러지듯 들어오는 어선들과 다도해의 절경 그리고 바람따라 일렁이는 꽃들의 향연을 보고 있노라면 이곳이 육지사람들이 애타게 찾던 천상의 화원이자 이상향이 아니었을까 하는 착각에 빠지게 만들만큼 풍경은 극치를 이룬다.

역시나 이곳에서 나는 "와~~! 와~~!"

외마디 탄성을 멈출 수 없었다.

반짝이는 바다와 해조음

온갖 새들의 노랫소리

한낮의 졸리운듯한 고양이의 눈,

거센 바닷바람에도 굴하지않고

곱디곱게 피어난 꽃들

그 어느것 하나 보석 아닌게 없다.

이런 가슴찡한 풍경앞에 서면살아있음에 감사하다는 마음이 절로든다.

한무리의 마을 어르신들을 만났다.

이마에는 인생훈장들이 깊게 패어있지만 입가에는 소녀같은 웃음을 한컷 머금고 있다.

고독할 수밖에 없는 섬에서 고독을 이겨내는 방법은 서로가 서로에게 온기를 나눠주는 방법밖에 없었을 섬이기에 채곡채곡 쌓인 심성들이 누구를 만나든 남녘의 꽃같은 웃음을 선물하는 건 아닐까.

지붕위를 사뿐사뿐걷는 고양이도 섬마을 어르신들의 고운 심성을 닮았는지 다들 순하다.

황량했을 섬 곳곳에 온기를 불어넣는 손길의 흔적들이 여기저기 베어있어 배시시 웃음짓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있다.

다시 이어진 해안가를 따라 걷다보니성화등대 아래로 신선대와 중빠진 굴이 나온다.

기기묘한 모양의 바위형상들이발길을 붙잡는다.

해안가에서는 쉼없이 밀려드는 파도와 그 파도가 바위에 부서지며

내는 해조음을 원없이 들을 수 있다.

가진것이 있건 없건 누구를 막론하고 날마다 출렁이는 것이 삶이리라.

바닷가에 서니 그 짓무른 가슴을 하얀 파도가 씻겨내주는 듯 하다.

해안가를 타고 돌아나오니 동백나무 군락지가 나온다.

언젠가 와 본 듯한 기시감이 든다.

그건 아마도 '한국인의 밥상'에서 최불암 선생님이 이곳에 서서 맨트를 날리시던 모습과 SNS에서 지인들이 가장 강추했던 사진들이 머릿속에 각인되어 데쟈뷰된 듯 하다.

느리게 걸었다 아주 천천히

이곳을 다녀온 꼬까(SNS 절친)님이 보았을 그 풍경을 가슴에 담고싶어서

아주 천천히 걸으며 동백꽃피던 계절을 떠올렸다.

비록 다른 시간 속에서 바라본 풍경이지만 같은 공간을 경험했다는 것만으로도 참 많은 이야기들을나눌 수 있겠다 싶다.

나를 육지로 태워다줄 배가 들어온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석양은 그야말로 황홀하여 사람을 혼몽하게 만든다.

그 석양빛을 못보고 돌아서자니섭섭함이 밀려온다.

햇살, 바람,꽃향기,고양이 울음소리...이것저것 주섬주섬 가슴에 담는다

언제 또 다시올지 모르는 곳이기에너무나도 아쉬워서

그리고 나 스스로에게 여행의 종결점에서 자문자답해본다.

"왜 사냐고?" 물으신다면"그저 웃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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