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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여순사건재심대책위원회 박병섭 공동 대표를 만나다 <2> - 지난 무죄 판결…“여순사건 학살 행위에 대한 국가 공식적 인정 의미 커”
  • 기사등록 2020-07-20 10:34:54
  • 기사수정 2020-07-20 14: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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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매거진= 진혜진 기자] 여순사건 특별법안이 제 21대 국회에서 통과될 것이라는 기대가 높아진 가운데, 전남매거진은 여순사건재심대책위원회 박병섭 공동 대표를 만났다.


박병섭 공동 대표는 전직 교사이자 지역사학자로 2003년 이후 여순사건 화해와 평화를 위한 순천시민연대 진상조사위원장, 여순사건에 대한 책들을 집필하는 등 여순사건 관련해 다양한 활동을 펼쳐왔다.


전남매거진은 박병섭 공동 대표를 만나, 여순사건재심대책위의 구성 배경과 올해 초에 내려진 재심 무죄 판결에 대한 역사적 의미를 짚는 자리를 마련했다. 


박병섭 공동 대표가 전남매거진과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Q. 여순사건재심대책위원회는 어떤 배경으로 구성됐는지?


A. 지역사회의 현안인 여순10.19문제를 시민의 힘으로 풀고자했던 것이 ‘여순사건 화해와평화를위한 순천시민연대’라는 기구입니다. 


그 기구가 2003년부터 10여년 정도 활동해오다가 활동이 중단되었는데, 2018년에 특별법 제정 운동을 위한 연대 기구를 만들어 활동을 재개해오고 있습니다. 그런 중에 재심을 신청한 유족들이 있었어요. 사법부가 계속 미뤄오다가 거의 7년 5개월만에 그것을 받아들였던 것이 지난해 3월이었거든요. 


‘이것은 세 유족만의 일이 아니다, 이분들의 소송을 지역사회가 적극적으로 후원할 필요가 있다’고 해서 여순사건 관련해서 적극적으로 활동해왔던 분들이 재심대책위원회를 만들었죠. 학술적 연구를 열심히 해온 주철희 박사, 여순연대의 오랜 활동가인 박소정 대표, 여순연구소, 지역시민단체의 활동가와 유족회 인사들이 참여했습니다. 


재심대책위원회의 가장 큰 역할은, 사법부가 판단을 정확히 할 수 있도록 자료를 제공하는 것이었습니다. 국가기관이 가지고 있는 자료들이 대부분 인멸되었는데, 그러다보니 사법부가 자료가 없다는 것을 핑계 삼아 제주 재심처럼 공소기각을 내릴 가능성이 높다고 본 거죠. 


만일 공소기각을 해버리면 일시적으로는 그들이 간편한 판결을 하는 것이 되겠지만,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무죄판결이거든요. 


그런데, 무죄판결이 아닌 공소기각이 내려지면 배상과 보상은 받을 수 있지만 진실규명하고는 거리가 있다고 판단했던 겁니다. 


그래서 ‘당시 자료를 최대한 구해 재판부가 바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하자, 그런 과정을 통해 재판부가 무죄판결을 내릴 수 있도록 일종의 적극적인 압력을 넣자, 이것을 계기로 특별법 제정의 필요성을 지역사회와 정치계에 강하게 제기를 하자’ 이런 생각이 바탕에 깔렸던 거죠. 



Q. 지난해 시작했던 민간인 희생자 재심 재판이 올해 초 무죄판결이 났습니다. 역사적의미를 짚어주신다면?


A. 사법부가 여순10.19사건 과정에서 있었던 국가권력의 횡포 내지 학살 행위를 공식적으로 국가가 인정을 했다는 점이 가장 의미가 깊습니다. 


지금까지 사법부는 그에 대한 어떠한 판단도 내리지 않았거든요. 다만 이전에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활동을 하면서 국가권력 다시 말해 군경에 의해 희생되었던 분들에게 배상을 하라고 판결을 내렸어요. 


하지만 그 정도에서 그쳤을 뿐, 국가의 학살행위에 대한 적극적인 단죄는 없었거든요. 이번 무죄 선고를 통해서 국가를 대신해 재판장이 사과까지 하는 진전된 자세를 볼 수 있었습니다. 특히 재판장께서는 이번 재판의 한계를 솔직하게 인정하면서 나머지는 특별법을 통해 해결할 수밖에 없다고 강하게 피력해 주셨습니다. 


국가 폭력의 진실을 밝혀내는 데는 유족의 노력도 중요함을 보여주었습니다. 장경자 유족은 아버님의 신원을 위해서 백방으로 노력하여 96세의 모친과 함께 그간의 고통에 대해 위로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Q. 지난 2월 전남동부권 지자체에 피해실태 및 피해자 전수조사를 요구하셨는데, 답변은 들으셨습니까?


A. 아직 듣지는 못했습니다. 전수조사를 하려면 강력한 행정력이 뒷받침돼야 하거든요. 우리는 순천시보다는 전라남도에 이 사안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여순10.19 피해 지역이 전남 전역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도의원들은 조례 제정이 되지 않아서 어렵다는 입장인데, 우리들 생각은 ‘여수 순천10.19사건 등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위령 사업 지원에 관한 조례’(제3880호,개정 4512호)가 있기 때문에 그것으로도 충분하기에, 의지의 문제라고 보고 있습니다. 이제라도 전라남도가 더 늦기 전에 전수조사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Q. 그동안 여순사건재심대책위원회의 고충이 있었다면? 


A. 무죄 판결을 얻어내기 위해 검찰과 사법부를 설득할 수 있는 자료를 구하는 것이 어려웠습니다. 다행히 전문적인 연구를 해오신 주철희 박사께서 적극적으로 자료 발굴을 많이 해주셔서 해결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추가로 자료를 발굴해 보도까지 된 것은 청암대 설립자 고(故) 강길태님의 회고록이었어요. 당시 재판이 어떤 식으로 이뤄졌는지 그에 대한 자세한 기록이 없어요. 그런데 청암대 설립자 강길태님은 이번의 재심 재판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던 고(故)장환봉님하고 같은 시기에 순천역에서 철도원으로 근무하셨던 분이에요. 


그분이 청암대 설립 이후 회고록을 쓰셨는데, 자기가 군사재판을 받게 된 과정, 군사재판의 진행상황, 수감생활부터 석방, 국내에서 살지 못하고 일본에 계시다가 다시 나중에 전과가 소멸되는 과정을 자세히 설명하셨어요. 그걸 제가 읽고서 캠코더를 들고 가 그분의 육성을 살아계실 때 생생히 녹화를 했죠. 이 화면을 KBS에 제보하고 재판부에 제출했습니다. 


다음으로 어려웠던 점은 재심을 신청했던 세 유족 중 두 분이 재판을 기다리다가 작고하셨습니다. 이분 유족과 일찍 연결되지 못해 더 많은 자료를 확보하지 못했습니다. 



Q. 군사재판 피고인들의 유족을 모아, 소송을 계획 중이라구요?


A. 여수 쪽에서 이런 부분을 제기했던 것 같은데, 쉽지 않습니다. 그 유족 찾기가 참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소송이 알려지면서 몇 유족들이 나타났어요. 그 분들을 중심으로 추가적으로 소송을 진행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현재까지는 확실한 인원이 두 분이라, 그 소송은 집단 소송이 아니라 아마 개별 소송이 되지 않겠나 생각합니다. 



Q. 대책위의 앞으로의 계획은?


A. 재심 대책과 관련된 것은 일단 다했습니다. 현재는 그 기구의 구성원들이 특별법 제정을 위한 노력을 이어서 하고 있습니다. 


여순10.19의 피해는 해당 유족이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것이지만, 지역사회가 함께 피해를 받은 것이고 아직도 그 유산을 안고 살아가지 않습니까? 우리 지역민은 사건을 겪은 어르신로부터 ‘앞서지 마라’, ‘잘난체 하지 마라’라는 말을 듣고 자랐습니다. 적극적인 참여보다는 회피와 보신이 강조되는 사회에서 발전은 어렵습니다. 5.18 당시 공수부대의 광주 학살에 분노하면서도, 10.19 당시 동포 학살을 거부했던 14연대의 의로운 항명에는 여전히 반란이라 생각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코로나 창궐 속에서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하면서도 여수와 순천을 찾는 분들이 많습니다. 천혜의 순천만 습지, 최고급 인공정원인 순천만국가정원을 찾는 분들이 순천의 오랜 역사와 문화 유산도 살피고, 평화 통일과 인권의 소중함을 깨우치고 가는 문화와 역사도시임을 널리 알려나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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