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매거진=송이수 기자] 찬바람이 싸늘하게 옷깃을 스치는 계절이 끝나가고 봄이 도래하고 있다. 꽃이 피는 계절엔 자연스레 사랑을 떠올리는 법. 하지만 먹고살기 바쁜 청춘들에 로맨스는 한낱 사치다. 근래 개봉된 영화 장르에서 로맨스·멜로를 찾아보기 힘든 이유도 경제악화 때문이라는 썰設이 있다. 그럼에도 인간은 사랑을 하지 않고서는 살 수 없기 때문에, 멈춘 심장을 다시 격동하게 할 작품을 준비했다. 

* 러브, 로지

감독 : 크리스티안 디터

주연 : 릴리 콜린스, 샘 클라플린

예쁘고 잘생긴 배우들이 풋풋한 로맨스를 보여준다. 밝고 다채로운 색감의 영상미가 재미를 더한다. 어린 시절부터 단짝인 로지와 알렉스는 서로 호감은 있으나 표현하지 못하고 머뭇거린다. 마치 줄타기를 하듯 다가가고 어긋나는 과정이 이어진다. 12년간 엇갈린 사랑의 종착지, 두 사람은 서로가 운명의 짝이었음을 깨닫는다.

뻔한 내용에 급박한 전개, 한국 정서로 이해하기 힘든 억지스럽고 과한 느낌도 있다. 막장 전개에 이은 작위적 해피엔딩이랄까. 그러나 어차피 로맨스의 결말은 다 비슷하다. 과정이 얼마나 흥미롭고 공감을 일으키며 우리의 환상을 자극하는지가 중요한 것 아니겠는가. <러브, 로지>는 그 조건을 충족한다. 톡톡 튀는 연애와 설렘, 갈등의 서사가 어우러져 있다. 연인과 함께 킬링타임용으로 볼 만 하다. 

* 비포 시리즈 (비포 선라이즈 & 비포 선셋 & 미포 미드나잇)

감독: 리처드 링클레이터

주연 : 에단 호크, 줄리 델피

비포 선라이즈부터 비포 미드나잇까지 1996년도부터 거의 10년에 한번 씩 개봉한 이 시리즈는 연애의 핵심을 꿰뚫고 있다. 우연히 기차 안에서 만난 제시와 셀린은 서로에게 이끌려 비엔나에서 하루를 보내게 된다. 첫눈에 반해 서로에게 다가간 이후 나머지 러닝타임은 전부 두 남녀의 대화로 채워진다. 남녀가 잡담을 나누는 시시한 영화 같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된다. 사소한 잡담이 연애의 필수요건이라는 것을.

흔한 우리네 사랑은 영화 속 마법 같은 특별한 사건을 동반하지 않는다. 작은 호감에서 시작하고 점점 서로에게 빠져든다. 그 중심 매개체는 바로 ‘대화’다. 비포 시리즈는 제시와 셀린이 처음 만나 사랑에 빠지는 과정, 시간이 엇갈려 이별한 후 다시 재회하는 과정,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린 뒤 권태기를 겪는 과정까지 오직 인물간의 ‘대화’를 통해 서술한다. 결국 사랑의 시작과 해결은 ‘대화가 필요해’라는 의미.

* 지금 만나러 갑니다

감독: 도이 노부히로

주연: 다케우치 유코, 나카무라 시도, 다케이 아카시

OST만 들어도 눈물이 왈칵 차오르는 영화. 소지섭, 손예진 주연의 리메이크 영화도 있지만 원작과는 비교가 불가능하다. 죽은 아내 ‘미오’가 1년 뒤 장마에 돌아와 6주간의 재회를 하게 되는 이야기. 기억을 잃은 아내와 어딘가 모자란 남편, 순수함을 간직한 아이의 관계가 흥미롭고 애틋하다.

평범한 이야기 구조임에도 흡입력이 대단하다. 돌아온 ‘미오’는 장마가 끝나면 떠나게 되어있는데 ‘제발 떠나지 않았으면’하고 바라게 된다. 그들의 사랑이 순수하고 아름다워서 화면에 비치지 않은 이야기도 들여다보고 싶어진다. 일본에 유독 많은 스타일의 소재와 장르인데 그 중 세손가락 안에 꼽는다.

주연배우인 ‘다케우치 유코’가 사망했다는 안타까운 소식에 다시 한 번 눈물 나는 작품.

* 나는 내일, 어제의 너와 만난다

감독: 미키 타카히로

주연: 후쿠시 소우타, 고마츠 나나

로맨스영화 중에는 ‘시간’과 ‘기억’을 소재로 한 작품이 굉장히 많다. 한마디로 먹히는 소재라는 뜻. 특히 일본 로맨스영화엔 이렇듯 비현실적인 설정을 가진 작품이 꽤 많다. 그중 여운이 남는 걸로는 원탑인 작품이다.

스무 살 타카토시는 우연히 열차 안에서 스무 살 에미를 보고 첫눈에 반한다. 용기내서 데이트 신청에 성공, 근데 에미는 다른 세계에서 왔다고 한다. 시간의 흐름이 정반대인 곳에서 온 여자. 두 사람은 30일간의 시한부 연애를 하게 된다.

흡사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와 엇비슷한 설정이지만 좀 더 로맨스에 치중했다. 엇갈린 시간을 함께하며 혼란에 빠지고 이해하고 사랑하는 과정이 애틋하다. 잘 만든 작품, 각본이 잘 짜인 작품은 n번째 볼 때마다 새로운 감상을 느끼게 한다. 타카토시의 관점으로 한 번, 에미의 관점으로 한 번 보고나면 아름다움과 서글픔이 온전히 전달된다.

* 라이크 크레이지

감독: 드레이크 도리머스

주연: 안톤 옐친, 펠리시티 존스

<연애의 온도>를 감명 깊게 봤다면 추천하는 영화. 처음엔 달콤한 사랑 그 자체였지만 시간이 갈수록 변화하는 감정을 디테일하게 그렸다. 영국 여자 애나와 미국 남자 제이콥은 같은 대학에서 사랑에 빠져 행복한 시간을 보내지만, 애나가 영국으로 다시 돌아가며 두 사람의 마음은 멀어진다. 갈등과 재회를 반복하며 성숙해지지만 풋풋했던 때 초심은 잃어간다.

영원한 설렘은 없다는 진리. 그럼에도 연인은 쉽게 이별하지 못하고 다시금 서로에게 이끌린다. 이끌렸던 감정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오래된 연인은 종종 고민한다. 예전의 너를 사랑했는데 지금의 너는 그때와 많이 다르다고. 사람은 변하고 감정도 변한다. 그 변화의 과정을 겪는 우리는 성숙하기 어렵다. 결말 부 재회한 연인의 표정은 미적지근한 감정의 변화만큼이나 미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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